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연

 

 

 

 

 

 

 

 

 

내 것이었으나 이제 더는 내 것이 아닌 기억들이 있다. 소년을 연명시키는 기억이 있다. 이를 테면, 쓰레기봉투를 찢는 고양이의 자세에 각인된 몇천 년 전 사바나의 기억(간밤에 추하다는 말을 들었다, p11), 제 집도 못 찾는 눈 먼 개의 삶을 지탱하고 있을 눈 뜬 시절의 기억(어느 날, p36), 끈이 풀어진 일리야 레핀의 구두 끈(세상 속으로, p33)따위. 두려운 것 없고 등푸르던 시절의 관성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파편 같은 푸른 유리 조각을 주워 담으며 무슨 법처럼, 나쁜 소년이 서 있는 것을 본다(나쁜 소년이 서 있다,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