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거기에, 그러니까 '상수'의 차에는 십 년에 걸쳐 쌓인 카탈로그 뭉치가 쌓여 있었다. 크기가 다양했고 당연히 색, 종이의 종류와 페이지 수, 낡은 정도와 인쇄 톤 그리고 냄새가 달랐다. 거기에선 분명한 축적의 냄새가 났다. 오랜 시간 부식과 흡착이 이루어진 뒤에야 나는 종이 본연의 것이 날아가 주변 환경에 순응하고 그 결과 완전한 변화가 이루어진 냄새. 어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흰 셔츠에 달라 붙은 커피 자국처럼 끝까지 남는다. 작가는 끈질기게 적체에 대해 쓴다.

 

신촌의 어느 중고 서점에서 삼 년 전에 구매한 이 책에는 이전 주인이 그어 놓은 흔적이 적체돼 있다. 내게는 영원히 '미지수'일 그 사람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굵기의 흔적을 책에 남겨 놓았다. '인사적체'. 연두색 색연필로 진하게 그어진 밑줄은 이 책의 생이 끝날 때까지 따라다닐 테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상수와 경애에 더해 미지수의 걸음을 좆게 된다. 때론 연두색 색연필로 굵게, 때론 연필로 각도를 달리해 두어 번 그려진, 밑줄을 따라 가며 나는 그 사람을 읽어 보려 애쓴다. 그러나 오독하겠지. 나는 그가 아니니까. 평생 해독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찾지도 못 할 서류 무더기 안에 적체된 마음들. 본래의 형태를 잃고 제멋대로 오독됐지만 여전히 소중한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