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의 일, 박서련

 

 

 

 

 

 

물건을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이는 등의 기계적인 동작은 가능했지만 온몸의 신경이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코감기로 하염없이 코를 풀고 나면 기압 차 때문에 먹먹해지는 귓속 같은 감각. 말하자면 온몸이 그런 기압 차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응급실 옆이 장례식장이라는 사실이 굉장한 무례로 느껴졌다. 편한 것과는 별개로 그랬다. 경아의 죽은 몸이 수습되는 동안 식장이 갖추어졌다. 나는 걸어서 옆 동 지하층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됐다. 겉에 껴입을 상복, 아빠 소매에 낄 삼베 완장, 하다못해 머리망이며 삼베 리본이 달린 실핀까지 모든 것이 거기에 준비되어 있었다. 경아가 죽기를, 거기에서 누군가, 여태 기다려온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없는 것이 없었다. 

 

 

 

계획만 세우고 함께 가지는 못했던 해외여행을 실제로 떠났더라면, 입국 심사장에서 경아와 나는 자매로 생각되지 못했을 것이다. 여권상 내 성은 LIM 으로, 경아의 성은 IM으로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아깝고 자신이 없었다면 아르바이트를 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정확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나를 믿었다.  

 

 

 

“나 이거 열 때마다 실비아 플라스 생각한다.” “왜요.” “오븐 여는 것 같잖아.” “나쁜 농담이네요.” “미안. 차 마실래?“

 

 

 

그래도 매니저가 내게 바라는 건 그 말 한 마디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그 말을 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았다. 이 사람은 사실 고분고분하고 사근사근한 나보다, 자기가 기대하는 것을 잘 들어주지 않는 나를 좋아하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나도 이 사람이 나를 계속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독서실에서는 책장만 좀 요란하게 넘겨도, 볼펜 버튼을 두 번 넘게 누르기만 해도 포스트잇 쪽지가 날아왔다. 고시텔 옆방 사람이 자판기 커피급으로 미친 사람이라고 치면 독서실 사람들은 핸드드립 커피만큼 미친 것 같았다. 받아본 쪽지 중 제일 황당했던 것은 ‘되도록이면 볼펜, 열람실 밖에서 누르고 들어와주세요’였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경아한테도 사진을 찍어서 보냈고, 경아는 ‘ㅋㅋㅋㅋㅋㅋㅋㅋ’라는 답장을 보낸 다음 그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즈음에 휴게실에서 가끔 날 째려보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이 그 황당한 쪽지를 보낸 것 같았다. 경아가 올린 사진을 본 모양이었다. 

 

 

 

후다닥 노트북을 접고 가방을 챙겼다. 심신이 온통 삐그덕거리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댓글 내용들이 자꾸 재생되었다. 어찌어찌 사람 행세를 하고는 있지만 사람으로서의 본질적인 기능,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상실된 것 같은 느낌을 가누어가며 부랴부랴 카페를 빠져나왔다. 

 

 

 

수라이라는 별명을 붙인 건 걔가 발견한 내 기질들을 우습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사람에게는 자기가 무서워하는 것을 우습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이따금 폼페이 생각이 났다. 경아가 사진 하나를 보내준 적이 있었다. 사타구니에 한 손을 얹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자위하다가 죽은 남자라고 경아는 설명했다. 영미권 SNS 유저가 ‘Masturbating Man, Pompeii’라는 코멘트와 함께 올린 것을 캡처한 이미지였다. 핸드폰을 쥐고 낄낄거리는 사이 경아가 사진을 또 하나 보냈다.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의 형상이었다. 자위하는 남자와 비슷한 질감인 것을 보아 또 다른 폼페이 유해인 듯했다. 나는 경아가 다시 여행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꼭 보러 가자. 나는 말했고 경아도 고개를 끄덕이는 캐릭터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경아가 보내준 사진들을 생각하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최후를 맞을까 자문하게 되곤 했다. 대단히 영예롭거나 기억할 만한 죽음 같은 건 상상하기도 어렵고 딱히 끌리지도 않았다. 조용하고 평범한 시체가 되는 일에도 사실은 상당한 운이 필요했다. 재수가 없으면 끔찍하게, 우스꽝스럽게, 원치 않는 장소에서 믿을 수 없이 민망한 상태로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에 대해 나는 필요 이상으로 자주, 오래 생각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자위남Masturbating Man은 자위를 하고 있던 게 아니라는 설이 있었다. 화산재를 뒤집어쓴 유해가 식으면서 근육이 수축되어 손이 사타구니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서로 껴안은 채 굳어버린 폼페이의 연인들은? 원래는 그런 자세가 아니었는데 그들의 근육도 의도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말인가. 

 

 

 

나는 윤명환이 나만큼, 또는 나 이상으로 괴로워하면서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었다. 나 역시 그랬다. 시간을 돌려 똑같은 일을 하거나 하지 않을 선택의 권리가 주어진다면 나는 또 그 일을 하고 말 것이다. 남은 평생 언젠가는 들킬지도 모른다는, 끝내는 죗값을 치러야 하리라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하더라도. 

 

 

 

윤명환이 일하는 요양원에 다녀온 다음 날, 누가 집 현관문을 퉁 치는 소리가 났다. 택밴가, 하고 나가보니 과연 작은 상자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뒤집어봐도, 어떤 면에도 송장이 붙어 있지 않았다. 아차 싶어 복도를 두리번거렸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무서우니까 열어보지 말까, 언니한테 가져가서 뭔지 대신 봐달라 부탁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 안에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것이 들어 있든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언니가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여행 전 서프라이즈 선물 같은 걸 두고 갔을 수도 있지. 나는 불안을 지우려고 그런 명랑한 생각을 해봤지만, 내가 아는 한 언니는 그런 식으로 선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박스를 열어보니 구깃구깃한 신문지가 완충재 대신 들어 있었다. 손으로 헤집자 물건이 보였다. 지퍼백으로 두 번 더 싸여 있어서 첫눈에는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상자 안에 든 물건은 피에 젖은 운동화 한 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