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고대 화학의 거장들은 불가능한 일을 약속해놓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현대의 거장들은 함부로 약속하지 않습니다. 금속의 성질은 바꿀 수 없고 불로의 묘약도 허황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얼핏 보면 그저 흙을 만지작거리고 현미경이나 도가니만 들여다보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은 진짜 기적을 이뤘습니다. 자연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밝혀냈지요. 하늘의 영역에도 손을 뻗고 있습니다. 피가 어떻게 순환하는지, 우리가 마시는 공기의 성질은 어떠한지도 알아냈고요. 그들은 한계를 모르는 새로운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하늘의 천둥을 호령하고 지진을 흉내 내며 심지어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림자로 모방하기도 합니다.”





나는 미신 이야기에 떨거나 유령을 두려워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어둠은 나의 공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교회의 묘지는 그저 생명을 빼앗긴 육신들, 아름다움과 힘을 가진 존재에서 벌레의 양식으로 전락한 육신들을 품은 곳이었지요. 그런 부패의 원인과 과정을 탐구하고픈 열정에 사로잡히자 이제 나는 밤낮없이 지하 묘지와 봉안당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심신이 미약한 사람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대상에 골몰했지요. 나는 멀쩡하던 인간의 육신이 훼손되고 분해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생기가 돌던 뺨이 죽음으로 부패하는 것을 보았고, 경이로운 눈과 뇌를 구더기들이 헤집는 광경도 보았어요.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변천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인과관계를 상세히 들여다보고 분석하던 어느 날, 불현듯 어둠 속에서 한 줄기 광명이 보였습니다. 한없이 단순하면서도 밝고 경이로운 그 빛이 제시하는 굉장한 가능성에 현기증이 나더군요. 한편으로는 이전에도 수많은 천재가 같은 학문을 탐구했는데 이 놀라운 비밀의 발견이 내 몫으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기가 막히기도 했고요.





온전한 인간이라면 늘 차분하고 평온하게 마음을 다스리며 한때의 열정이나 지나가는 욕망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지식을 향한 열정도 예외는 아니지요. 연구에 빠져 소중한 이들을 소홀히 하고, 무엇도 방해할 수 없는 단순하고 소소한 즐거움마저 누릴 수 없다면 정상적인 연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추구해서는 안 되는 지식이라는 뜻이지요. 이런 규칙이 철저하게 지켜졌다면, 즉 사랑하는 가족의 평화를 깨뜨리는 일은 무엇도 허락되지 않았다면 그리스는 속국이 되지 않았을 테고 카이사르는 조국을 구했을 것이며 아메리카 대륙도 그렇게 성급하게 발견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랬더라면 멕시코와 페루의 제국들이 무너지지도 않았겠지요. 





아! 그 섬뜩한 얼굴을 누가 견딜 수 있을까요. 송장이 살아나서 움직인다고 해도 그렇게 오싹하지는 않을 겁니다. 완성하기 전에 바라볼 때에도 추한 몰골이었지만 근육과 관절을 움직이자 단테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흉물이 됐더군요.





“상인도 장부 정리 말고 다른 공부를 해야 한다고 아버지를 설득하느라 얼마나 애먹었을지 짐작하지? 아마 아버지는 지금도 회의적이시겠지. 내가 끈질기게 애원하는데도 시종일관 《웨이크필드의 목사》에 나오는 네덜란드 교장처럼 대꾸하시더라고. ‘나는 그리스어를 몰라도 1년에 1만 플로린을 벌고 그리스어를 몰라도 배불리 먹는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가 못마땅해도 자식은 못 이기지. 결국 지식의 땅으로 탐사 항해를 떠나도 좋다고 허락하셨어.”

플로린 : 네덜란드의 옛 화폐단위.
그리스어를 몰라도 배불리 먹는다 : 영국의 작가 올리버 골드스미스(1730~1774)의 소설 《웨이크필드의 목사》에 등장하는 네덜란드인 교장은 자신의 무지를 떠벌린 뒤 ‘나는 그리스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봐야 좋을 게 없다고 믿는다’고 결론짓는다.





크렘페 교수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견딜 수 없이 예민한 상태에서 그의 거칠고 직설적인 찬사를 듣고 있자니 발트만 교수의 인자한 칭찬을 들을 때보다 훨씬 더 괴로웠지요. 그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아이고, 연구원이 오셨네! 클레르발 군, 이 친구가 우리 모두를 추월했네!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텐가? 틀림없는 사실이라니까. 한두 해 전만 해도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를 복음처럼 굳게 믿었던 청년이 이제 이 대학 최고의 연구원으로 우뚝 서다니. 빨리 끌어내리지 않으면 우리 모두 체면이 말이 아니겠어. 정말이라니까.”





그러자 악마가 대꾸하더군요. “당신이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사람들은 모두 흉측한 것을 증오하지. 살아 있는 존재를 통틀어 누구보다도 추한 내가 얼마나 혐오스러울까! 하지만 나의 창조자인 당신마저 나를 혐오하고 부정하다니. 당신과 나는 한쪽이 죽어야만 풀리는 운명의 끈으로 묶여 있다. 나를 죽이려 하다니. 감히 생명을 갖고 장난을 치나? 당신이 나에게 도리를 지킨다면 나도 당신과 인간들에게 도리를 지키겠다. 나의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다시는 인간들을 건드리지 않겠다. 거절한다면 당신의 남은 친구들을 모조리 죽여 그들의 피로 지옥의 나락을 가득 채울 것이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 그 속에서 대화하는 인물들은 나와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르더군. 나는 그들에게 공감하고 어느 정도는 그들을 이해했지만 내 자아는 온전히 형성되지 않았어. 내게는 의지할 사람도 혈육도 없었지. ‘나의 출발지는 빈칸’이었고 내가 사라져도 슬퍼할 이가 없더군. 나의 외모는 흉측하고 몸집도 거대했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누구일까? 무엇일까? 어디서 왔으며 결국 어디로 가게 될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남서쪽으로 가야 목적지에 닿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의 길잡이는 태양뿐이었다. 어떤 도시들을 지나야 하는지도 몰랐고 인간에게 길을 물어볼 수도 없었지. 하지만 절망하지 않았어. 당신을 향한 감정은 증오뿐이었지만 내가 도움을 청할 사람도 당신뿐이었지. 냉혹하고 무정한 창조자! 내게 모든 지각과 열정을 부여해놓고 인간의 경멸과 공포 앞에 나를 내팽개치다니. 하지만 내가 동정과 구원을 요구할 사람도 당신밖에 없으니 인간의 형상을 한 누구도 내게 보여주지 않은 정의를 당신에게서 찾기로 했다. 






"아니,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아. 하지만 내 행동의 동기를 오해한다면 그런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 나는 내 불행에 공감해달라는 게 아니다. 공감은 끝내 구할 수 없을 테지. 처음에 내겐 행복과 애정, 선에 대한 사랑이 넘쳤고 누군가가 그런 감정을 함께 나눠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제 내게 선은 그림자만 남았고 행복과 애정은 괴롭고 역한 절망으로 변했으니 무슨 공감을 원하겠는가? 고통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기꺼이 혼자 고통을 견딜 것이고 죽고 나면 혐오와 비난이 나의 기억을 가득 메워도 만족하겠다. 한때는 덕을 쌓고 명예를 얻고 즐거움을 누리는 꿈을 꾸며 마음을 달랬다. 나의 겉모습을 뛰어넘어 훌륭한 자질을 보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리라는 허황된 희망을 품기도 했어. 영광과 헌신이라는 고귀한 이상에 젖기도 했고. 하지만 악은 나를 가장 비천한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추락시켰어. 그 어떤 범죄나 악행, 불행도 나의 것에 견줄 수 없다. 내가 저지른 무시무시한 행동을 하나하나 돌아보면 나도 한때는 선의 위엄과 아름다움에 취해 숭고하고 탁월한 이상에 젖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도 하지. 타락한 천사는 사악한 악마가 되는 법. 그러나 신과 인간의 적인 타락 천사에게도 외로움을 나눌 친구가 있었지만 나에겐 아무도 없다.

프랑켄슈타인을 친구라고 부르는 당신은 내가 저지른 죄악과 그가 겪은 불행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군. 하지만 그가 아무리 자세히 들려줬어도 내가 무력한 열정 속에서 비참하게 견딘 시간의 이야기는 그 안에 담기지 않았겠지. 나는 그의 희망을 짓밟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욕망을 채운 것도 아니었다. 늘 끝없이 갈망했을 뿐이지. 사랑과 우정을 그토록 원했지만 언제나 거부당했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모든 인간이 나에게 죄를 지었는데 왜 나만 죄인으로 몰려야 하지? 친구를 오만불손하게 내쫓은 펠릭스는 왜 증오하지 않지? 제 자식을 구해준 자를 죽이려 했던 농부는 왜 비난하지 않지? 그래, 그들은 선하고 무결한 존재겠지. 나는, 버림받고 비참하게 살아온 나는 멸시당하고 걷어차이고 짓밟혀야 마땅한 실패작이고. 그런 부당한 대우를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끓어오른다.

하지만 내가 몹쓸 놈인 것도 사실이다. 사랑스럽고 힘없는 인간들을 죽였으니까. 무고한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목을 졸랐지. 나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어떤 존재도 해치지 않은 자의 목을 움켜쥐고 숨통을 끊었어.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존경받을 만한 인간인 나의 창조자를 불행에 빠뜨렸고. 끝까지 쫓아가서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게 했다. 그의 창백하고 차가운 시신이 여기 누워 있어. 당신은 나를 증오하겠지만 나만큼은 아니겠지. 그런 짓을 저지른 이 손을 볼 때면, 그런 짓을 계획한 이 가슴을 생각할 때면, 더는 이 손을 보지 못하는 순간을, 더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순간을 얼마나 갈망하는지 모른다.

  내가 다시 악행을 저지를까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할 일은 거의 끝났다. 내 굴곡진 삶을 완성하기 위해, 내가 할 일을 다 끝내기 위해 필요한 건 당신이나 다른 누군가의 죽음이 아닌 바로 나의 죽음이다. 나를 제물로 바치는 일을 미룰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이 배를 떠나 내가 타고 온 얼음 뗏목을 타고 북쪽 끝의 땅으로 갈 것이다. 거기서 장작을 모아다가 이 비참한 몸뚱이를 태워 재로 만들겠다. 어떤 불경한 인간이 호기심에 이끌려 나 같은 존재를 또 만드는 일이 없도록. 나는 죽을 것이다. 지금 나를 압도하는 고통에 더는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아직 충족되지도 꺼지지도 않은 감정에 더는 이끌리지 않을 것이다. 나를 존재하게 한 이는 죽었고 나까지 죽는다면 우리 둘에 대한 기억은 금세 사라질 테지. 나는 이제 태양과 별을 보지 못할 것이고 뺨을 간질이는 바람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빛과 감정, 감각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행복을 찾을 수 있겠지. 몇 년 전 세상이 내어준 풍경이 처음 눈앞에 펼쳐졌을 때, 여름의 기분 좋은 열기를 느끼고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을 들었을 때,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을 때 울다가 죽었어야 했다. 이제는 죽음이 나의 유일한 위안이 됐지. 죄로 얼룩지고 쓰디쓴 후회로 만신창이가 됐으니 죽지 않으면 어디서 안식을 찾는단 말인가? 그럼 안녕히! 나는 이만 떠나겠다. 당신이 이 두 눈에 담은 마지막 인간일 것이다."